달의 조각

꿈을 꿨다 바싹 마른 입 안 표면에 노란 세포 조직이 다닥다닥 일어나는 물기 하나 없이 비틀려지는 동안 내가 상실한 것은 감정 낭만 어쩌면 문학 긴 잠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때 물 한 잔에 사랑과 다짐과 필사한 시 한 편을 털어 넣었다 손톱 끝부터 수분이 채워지다 펜 하나 겨우 쥘 수 있는 질량이 생기자 또 다시 글을 쓰기로 한다 제멋대로 굴러가는 나의 개...

겨울 나무야 너는 그저 사랑할 대상이 필요했던 거지 얻어 걸리는 동결을 그냥 한 번 껴안아 본 거잖아 하필이면 그 냉각체가 나였고 뭣도 모르고 네 품 한 번에 녹아내렸다니 이런 바보같은 환절이 어디 있니

종말같은 태양이 도래하고 부정과 어둠이 포말처럼 일어나 작은 행성은 멸망의 그림자에 숨었다

생기를 잃은 전라의 가지들이 얽혀오는 바람마다 붙들어 놓던 밤 가로등마저 발산을 포기하고 어둠을 승낙하기로 했다 콜타르가 치민 도시에 달마저 숨 죽인 도로에 별안간 광채가 점멸點滅한다

그러니까 넌 내 말을 들어봐 왜 물 고인 호수에 파랑이 이냐니까 어둠의 척살장에 왜 해가 뜨냐니까 발음하려 하면 질식이 날아들던 사랑이 왜 네 이름 앞에선 기꺼워지냐니까

봄이 오려면 멀었던가요 그립거든 내 마음을 잘라 거둬가도 될 겁니다 묽은 심장에 번지는 사월빛 잉크로 아흔아홉 번째 편지를 써내려가고 있거든요

깜빡일테니 건너와주세요

여름 밤의 오전 열두 시 길가 건너 있는 불 꺼진 공용 도서관 앞에 하나 달린 작은 횡단보도 가로등도 외면한 그 응달에 작은 푸름이 달리고 있었다

우리는 사막에 놓였다 저마다의 넘어야 할 모래언덕이 있다만 내 봉우리는 왜 자꾸 바람에 밀려 어디론가 어디론가 가 버리는가 누군가는 고열을 먹고 죽었다고 그랬다 작열하는 모래밭 위 걸음을 묶어둘 수 없단 것이 숨통을 조여왔다